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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추천(곡성), 믿음과 의심 사이: 캐릭터들의 갈등과 심리

by think0067 2025. 4. 20.

 

영화 곡성
영화 곡성

 

곡성(哭聲): 미스터리와 공포, 그리고 믿음의 경계

 

영화 '곡성'을 처음 봤을 때 정말 등골이 오싹했다. 2016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나홍진 감독의 작품인데,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봉 당시 칸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기억이 난다. 단순한 공포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더 묵직한 질문들이 남는 그런 영화였다.

 

1. 어둠 속의 마을, 곡성과 이야기의 시작

전라남도 곡성, 이름부터가 곡소리(哭聲)를 연상시키는 이 마을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온몸에 피부병 같은 걸 앓고, 또 누군가는 미친 듯이 가족을 죽이고... 마을 전체가 이상한 공포에 휩싸인다.

주인공 종구(곽도원)는 그냥 흔한 시골 경찰이다. 처음엔 이런 사건들을 그냥 독버섯 때문이라고 대충 넘기려고 한다. 솔직히 영화 초반부에 종구의 모습을 보면 좀 답답하다. 대충대충 일하고, 술 마시고, 별로 유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근데 문제는 그의 딸 효진(김환희)마저 이상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아이가 갑자기 욕설을 내뱉고, 광기어린 눈빛으로 변하면서 종구의 세계관이 완전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무능한 경찰이라도 자기 딸이 위험해지니까 필사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다.

영화 초반부의 살인 현장들은 정말 충격적이다. 특히 비 오는 날 발견된 첫 번째 살인 현장... 그 섬뜩한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가 포착한 곡성의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불길하다. 안개 낀 산과 깊은 숲, 계속 내리는 비... 마치 자연마저도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리고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일본인(쿠니무라 준)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를 "일본인 영감"이라 부르며, 그가 산에서 뭔가 이상한 짓을 한다고 수군거린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무당 일광(황정민)의 등장, 정체불명의 여인(천우희)까지... 도대체 누가 진짜 악마이고 누가 구원자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2. 믿음과 의심 사이: 캐릭터들의 갈등과 심리

이 영화의 진짜 무서운 점은 단순히 귀신이나 악마가 나와서 깜짝 놀래키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그 불안감이다. 종구는 계속해서 갈팡질팡한다. 처음엔 일본인을 의심하고, 그다음엔 무당을 믿고, 또 의심하고...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곽도원의 연기가 정말 일품이다. 처음엔 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시작해서, 점점 더 절박해지고, 후반부에는 완전히 미쳐버린 듯한 표정까지...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이 숨이 가빠진다. 특히 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진짜 아버지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 일광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의 굿 장면은 영화 역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펼쳐지는 압도적인 의식... 처음에는 좀 과장된 것 같다가도 점점 그 안에 빠져들게 된다. 일광이 신들린 듯 뛰어다니며 악을 물리치려는 모습에서 한국 무속신앙의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쿠니무라 준의 일본인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께끼 같다. 그는 말수가 적고 미소를 짓지만, 그 미소 속에 뭔가 섬뜩한 것이 숨어있는 듯하다. 정말 그가 악마인지, 아니면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의심받는 것인지... 영화는 끝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천우희가 연기한 그 정체불명의 여인... 그녀는 마치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가끔씩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도 진실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을 파는 건지 알 수 없다. 영화 후반부 그녀의 웃음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

 

 

3. 해석의 미로: 영화의 결말과 남겨진 질문들

솔직히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아니,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확한 결말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좀 당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인 것 같다. 결말을 본인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만드는...

일단 종구의 딸은 결국 살지 못한다. 종구 자신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그런데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누가 진짜 악마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내가 처음 봤을 때는 일본인이 명백한 악마라고 생각했다. 그의 집에서 발견된 사진들, 마지막에 보여준 섬뜩한 웃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무당 일광도 의심스럽다. 그는 정말 종구를 도우려 했던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걸까?

영화 마지막 장면들에서 일본인이 사진을 찍는 모습, 여인의 섬뜩한 웃음, 그리고 각 캐릭터의 정체(혹은 그 모호함)는 영화가 끝난 지 한참 후에도 머릿속에 맴돈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모호함이 의도적이라고 했다고 한다. 관객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해석하길 바랐다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세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종교적인 관점에서 선과 악의 대결로 볼 수 있다. 둘째, 인간의 불안과 편견이 만들어낸 비극으로 볼 수도 있다. 셋째,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외부인(특히 일본인)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악'이 묘사되는 방식이 흥미롭다. 영화 속 악은 그냥 무섭게 생기고 끔찍한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악은 우리의 불안과 의심을 이용하고,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종구에게는 딸)을 미끼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곡성'은 단순한 오컬트 공포영화를 넘어선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묘한 불안감이 남는다. 그리고 자꾸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견고한가? 악은 정말 외부에만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 내면에도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나홍진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한국적 정서와 보편적 공포를 결합한 스토리텔링은 '곡성'을 단순한 장르 영화를 넘어선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공포영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끝내기보다는 여러 번 다시 봐야 그 깊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볼 땐 그냥 무서운 공포영화로 느껴졌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볼수록 더 많은 숨겨진 의미와 디테일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곡성'은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