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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전쟁의 의미 상실

by think0067 2025. 5. 6.

영화 고지전
영화 고지전

 

 

 

 

 

한국 영화 '고지전' 리뷰

 

영화 '고지전'은 2011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입니다. 6.25 전쟁의 막바지, 즉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쟁 초반의 전선이 빠르게 바뀌는 모습과는 달리, 이 영화는 '고지전'이라는 제목처럼 특정한 고지를 두고 벌어지는 치열하고 지루한 교착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애록고지'는 영화의 핵심적인 공간입니다. 이 고지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휴전선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한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영화는 이 애록고지를 둘러싼 지긋지긋한 전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전투 장면을 넘어 전쟁의 비극성과 인간성을 깊이 파고드는 작품이라고 평가받습니다.

 

 

 

휴전 협상 속 의문의 사건과 애록고지

 

영화의 이야기는 1953년 2월, 휴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시작됩니다. 동부 전선의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 총알이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상부에서는 이 사건을 적과의 내통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하고,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 분)에게 동부 전선으로 가 이 사건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립니다. 은표가 애록고지로 향하면서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은표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옛 친구 김수혁(고수 분)입니다. 유약하고 학생다웠던 수혁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쟁을 겪으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하여 '악어중대'의 실질적인 리더가 되어 있습니다. 악어중대는 명성과 달리 무언가 미심쩍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북한 군복을 덧입거나, 갓 스무 살이 된 어린 청년이 대위로 부대를 이끄는 등 일반적인 부대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은표는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애록고지의 실체와 마주하게 됩니다. 애록고지는 오직 병사들의 목숨으로만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격전지였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상 자체가 비극이었습니다. 은표는 중대장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애록고지라는 공간이 만들어낸 극한의 상황과 그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초반의 미스터리 수사극 분위기는 점차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변모해 갑니다.

 

 

 

애록고지, 지옥 같은 일상과 그 속의 사람들

 

애록고지는 영화의 핵심적인 무대이자,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이 고지는 남북한이 끊임없이 빼앗고 빼앗기는 곳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고지를 차지해도 잠시뿐, 곧바로 적의 반격이 이어지고 다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반복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전쟁의 무의미함과 지긋지긋함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병사들은 왜 이 고지를 차지해야 하는지,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냅니다.

악어중대 대원들의 모습은 이러한 애록고지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이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적응하며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적의 군복을 입는 것은 물론, 전투 중에도 북한군과 편지를 주고받는 등 인간적인 교류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는 적과 아군이라는 구분조차 무의미해진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자, 전쟁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고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갓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대위가 되어 부대를 이끄는 모습 역시 비정상적인 전쟁 상황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현실을 반영합니다. 이들은 영웅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평범한 젊은이들일 뿐입니다. 애록고지에서의 일상은 죽음과 맞닿아 있으며, 병사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를 살아갑니다. 참호 속에서 쥐를 잡아먹거나, 서로에게 의지하며 버티는 모습은 전쟁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악어중대 대원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현실이 얼마나 참혹하고 인간적인 삶을 파괴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애록고지는 더 이상 단순한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전쟁이 만들어낸 거대한 감옥이자 지옥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전쟁의 의미 상실

 

영화 '고지전'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는가?'입니다. 휴전 협상은 진행되고 있지만, 애록고지에서는 여전히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계속됩니다. 병사들은 명분도 목적도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서로를 죽이고 죽습니다. 영화 초반, 북한군 장교 현정윤은 포로로 잡혀온 수혁과 은표에게 전쟁을 하는 이유를 몰라서 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12시간의 마지막 전투가 끝날 무렵, 은표는 총에 맞은 현정윤과 마주하고 그에게 다시 한번 묻습니다. "전쟁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현정윤은 예전에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렸다고 대답합니다. 이 대화는 '고지전'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처음의 명분이나 목적은 퇴색되고,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가 된 병사들의 처지를 대변합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계속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기계처럼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눕니다.

영화는 인간이 전쟁을 만들고, 이러한 전쟁 환경에 적응하며 인간성마저 변화시킨다고 이야기합니다. 전쟁의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전쟁터에 내몰리고, 그 속에서 인간성을 내던지고 잔혹하게 변해가는 장병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겨 줍니다. 특히 휴전 협상이 코앞인데도 마지막까지 단 하나의 고지를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은 전쟁의 광기이자 비극입니다. 영화는 '조국'이나 '승리' 같은 거창한 명분 뒤에 가려진 병사 개개인의 고통과 희생에 초점을 맞춥니다. 누가 이기든 지든, 고지를 빼앗든 빼앗기든, 결국 죽어나가는 것은 평범한 병사들이라는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 줍니다.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과 무의미함을 강렬하게 비판합니다. 땅 한 조각을 두고 벌이는 소모적인 싸움이 얼마나 덧없고 잔인한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병사들은 점령한 고지에 꽂힌 깃발을 보며 잠시 환호하지만, 그 환호 뒤에는 수많은 전우의 시신이 쌓여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깊은 울림

 

'고지전'은 전쟁의 참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총알이 빗발치고 포탄이 쏟아지는 전투 장면은 생생하며, 병사들이 겪는 고통과 공포를 여과 없이 보여 줍니다. 폐허가 된 고지의 모습, 시신이 널려 있는 참호,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합니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애록고지는 지옥과도 같은 공간으로 묘사되며, 관객들에게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잔혹한 장면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적인 유대와 연민,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병사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함께 보여 줍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는 모습은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인간성을 완전히 잃지 않은 병사들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친구였던 은표와 수혁이 전쟁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견뎌내는지를 보여주는 과정 역시 인상적입니다. 유약했던 수혁이 살기 위해, 그리고 전우들을 지키기 위해 냉혹해지는 모습은 전쟁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영화 '고지전'은 6.25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특정 진영의 승리나 패배보다는 전쟁 그 자체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념과 명분 아래 희생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잔인함을 고발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모른 채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은 아직도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떠올리게 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는 비록 전쟁의 마지막 순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잊혀 가는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그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는 묵직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