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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미완의 사랑 남겨진 여운

by think0067 2025. 5. 9.

영화 건축학개론
영화 건축학개론

 

 

 

 

 

 

영화 건축학개론 리뷰

 

건축학개론은 단순히 첫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담고 있는 정서가 깊고 복잡합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주인공들이 과거의 자신들과 마주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들, 그리고 그 시절의 순수함과 현재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참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릿해지고, 나만의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해서 여러 번 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만남, 풋풋한 설렘

 

영화는 1990년대 후반, 풋풋한 스무 살의 두 주인공 승민과 서연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건축학과 수업 '건축학개론'에서 처음 만난 둘은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함께 통학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동네를 조사하는 과제를 하며 서로에게 스며들게 됩니다. 비어 있는 낡은 집을 둘만의 아지트로 삼고, 서연이 좋아하는 전시회(전람회) 음악을 함께 듣는 장면들은 그 시절의 순수하고 어설펐던 첫사랑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제훈 배우와 수지 배우가 연기한 스무 살 승민과 서연은 정말 그 나이대의 풋풋함과 설렘, 그리고 쑥스러움을 너무나 잘 표현해냈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표현하는 것이 어렵고, 작은 오해나 타이밍 때문에 어긋나는 모습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 나도 저랬었지'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승민의 어리숙함과 서연의 알 수 없는 표정들이 교차될 때마다 관객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 대학생들의 모습, 지금보다 훨씬 느리고 아날로그적이었던 소통 방식들이 영화에 잘 녹아있어서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PC통신이나 CD 플레이어 같은 소품들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능성이 넘쳤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오직 서로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던 짧지만 강렬한 시간이었습니다.

 

 

 

15년 후, 재회와 현실

 

시간은 흘러 15년 후, 35살이 된 승민과 서연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건축가로 일하며 현실에 찌들어 살던 승민에게 불쑥 서연이 나타나 제주도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서연은 스무 살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외적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졌고,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승민 역시 순수했던 대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무뚝뚝하고 까칠한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엄태웅 배우와 한가인 배우가 연기한 현재의 승민과 서연은 과거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혹은 숨기고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재회 후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는 그동안 흘러간 시간과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변화를 여실히 느끼게 합니다. 서연은 돈도 많고 시간도 많아 보이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삶의 큰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승민은 그런 서연을 보며 처음에는 속 편한 소리 한다며 냉소적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 집을 짓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되고, 숨겨왔던 서로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둘 사이의 감정선이 복잡하게 얽히게 됩니다. 과거의 풋풋함과는 상반되는 현재의 현실적인 문제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미묘한 감정들이 이 시퀀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첫사랑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서로의 현실적인 상황, 이미 각자의 삶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상태에서 과거의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혼란스럽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첫사랑의 환상 뒤에 숨겨진 현실적인 아픔을 보여주며 더욱 깊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집 짓기, 추억을 쌓아가는 시간

 

서연의 제주도 집을 짓는 과정은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물리적인 행위를 넘어, 두 사람이 함께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현재의 감정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시간입니다. 함께 땅을 보고, 설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스무 살 시절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보게 됩니다. 집이 완성될수록 두 사람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하고,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 편집되면서 관객들은 두 사람이 공유했던 시간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집의 각 부분은 과거의 특정 기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건축학개론 강의실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라거나, 함께 아지트로 삼았던 낡은 집의 구조가 오버랩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집 짓기는 단순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라, 두 사람의 깨졌던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리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물리적인 집은 완성되지만, 그들의 관계가 완벽하게 재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승민의 친구 '납뜩이'입니다. 조정석 배우가 연기한 납뜩이는 승민에게 연애 코치를 해주는 역할인데, 그의 유쾌하고 현실적인 조언들은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동시에 풋풋했던 그 시절의 연애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진지한 첫사랑 이야기에 코믹한 요소를 적절히 가미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완의 사랑, 남겨진 여운

 

건축학개론의 결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먹먹함과 아련함을 남깁니다. 집은 완성되지만, 승민과 서연의 사랑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중요한 첫사랑으로 남지만, 현재의 삶을 선택하며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합니다. 서연은 완성된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승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이 재회와 집 짓는 과정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자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첫사랑이 항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머물러 살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승민이 서연이 남긴 CD플레이어를 들으며 전시회 음악을 듣는 모습은 과거의 추억을 현재로 불러오지만, 동시에 그 추억을 가슴에 묻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미완으로 남은 첫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더 큰 여운을 남깁니다. 만약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 그리고 내 첫사랑은 어땠었지 하는 회상으로 이어지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마음속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영화'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너무나 솔직하고 아름답게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간, 기억, 현실, 그리고 상처와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깊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풋풋한 설렘부터 어른의 현실적인 아픔까지,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어 보는 내내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번 보시기를 추천하고, 이미 보셨다면 다시 한번 보면서 그 시절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