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양성' 심층 리뷰
1. '황산벌'의 유쾌함을 잇는 두 번째 이야기
2011년에 개봉한 영화 '평양성'은 이준익 감독님의 작품으로, 2003년 개봉하여 큰 사랑을 받았던 '황산벌'의 후속작입니다. '황산벌'이 백제와 신라의 황산벌 전투를 배경으로 했다면, '평양성'은 그로부터 8년 뒤,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작에서 백제가 무너진 후, 이번에는 고구려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황산벌'에서 큰 재미를 주었던 사투리 유머는 '평양성'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전작에 비하면 그 비중이 조금 줄어든 느낌입니다. 대신 출연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코믹한 분위기를 이끌어갑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 재현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 배경을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 군상들의 어리석음, 탐욕, 우정, 의리를 유머로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전체적인 톤은 밝고 유쾌하게 유지하여, 기존의 사극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매력을 보여줍니다. '황산벌'에서 살아남아 백제에서 신라군으로 편입된 거시기(이문식 배우)와 신라의 노회한 장수 김유신(정진영 배우)이 그대로 출연하여 전작과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관객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합니다. 이처럼 '평양성'은 '황산벌'이 구축한 유쾌한 사극의 틀을 이어받으면서도, 고구려 멸망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시도합니다.
2. 전쟁의 이면과 그 속의 인간적인 이야기
'평양성'은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영화는 신라와 고구려의 전쟁을 큰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그 안에는 연개소문의 세 아들들 간의 형제 전쟁, 백제 출신 병사들과 신라 병사들 간의 소소한 다툼 등 여러 층위의 갈등이 그려집니다. 특히 백제가 멸망한 후 신라군에 의해 또다시 전쟁터로 내몰린 백제 출신 병사들의 이야기는 당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나라가 어디가 되든 그저 살아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영화는 전쟁의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비극과 아이러니를 강조합니다. 김유신은 여전히 교활하고 얍삽한 전술을 사용하며, 당나라는 신라를 업신여기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민족을 배신하고 중국에 고구려 땅을 내주는 전쟁이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화는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먹고 싶은 마음과 먹지 말라고 말리는 마음의 싸움, 귀찮음과 싸우는 몸, 눈앞의 유혹과 싸우는 손 등, 거시기의 대사를 통해 일상 속의 작은 갈등들까지도 전쟁으로 비유하며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늙은 김유신이 "안 싸우고 이기는 게 최고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전쟁의 허무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승리자에게는 희망과 기대를 주지만, 패배자에게는 피와 눈물을 함께 주는 것이 전쟁의 민낯임을 어린 남산의 눈물을 통해 보여주며, 영화는 웃음 속에 숨겨진 비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3. 규모감 있는 연출과 유쾌한 전투 장면
'평양성'은 고구려의 평양성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거대한 규모의 전투 장면들을 선보입니다. 영화의 미술과 세트 디자인은 훌륭하며, 고증에 맞춘 세트와 의상은 당시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 현실감을 더합니다. 물론 극적인 연출을 위한 과장도 적절히 사용되어 시각적인 재미를 더합니다. 카메라 워킹과 편집은 속도감 있게 이어지며, 특히 전투 장면에서의 연출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 영화의 전투 장면은 '최종병기 활'처럼 개인의 활 액션에 집중하기보다는, 대규모 병력이 부딪히는 전장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코믹한 상황들을 삽입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병사들의 사투리 대화나 예상치 못한 행동들이 긴장감 넘치는 전투 중간중간에 웃음을 유발합니다. 이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인간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감독의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멋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재미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평양성'의 전투 장면에서 느낄 수 있다는 평도 있습니다. 전투의 규모감과 함께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해프닝들이 어우러져 '평양성'만의 독특한 전투 연출 스타일을 완성합니다.
4.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평양성'에는 '황산벌'에 이어 다시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새롭게 합류한 캐릭터들이 조화를 이루며 극을 이끌어갑니다. 정진영 배우가 연기하는 김유신은 여전히 노련하고 능글맞은 모습으로 신라군을 지휘합니다. 이문식 배우의 거시기 캐릭터는 이 영화의 사실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산벌' 전투에서 살아남아 백제, 신라를 거쳐 고구려 전투까지 참여하게 된 그는 전쟁의 부조리함을 온몸으로 겪는 인물이며, 그의 시선을 통해 관객들은 전쟁의 비극과 일상 속의 코믹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절대 나대지 말 것을 강조하지만 제일 눈에 띄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합니다.
류승룡 배우는 고구려의 장수 남건 역을 맡아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윤제문 배우는 남건의 동생 남산 역으로 등장하여 형제간의 갈등을 연기합니다. 선우선 배우는 거시기와 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갑순 역으로 출연하여 극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정재영 배우와 정준호 배우 등 다른 배우들 역시 각자의 역할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평양성'만의 독특한 코미디와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영화 '평양성'은 '황산벌'의 후속작으로, 고구려 멸망 직전의 평양성 전투를 배경으로 한 유쾌하고도 씁쓸한 사극 코미디입니다. 전작의 유머 코드를 이어받으면서도, 전쟁의 비극적인 이면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규모감 있는 전투 연출과 그 안에 녹아든 코믹한 상황들은 '평양성'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며, 정진영, 이문식, 류승룡 등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더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픽션으로서 전쟁의 허무함과 삶의 아이러니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평양성'은 '황산벌'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한국 사극 코미디의 한 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